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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의 눈물 1회차를 끝내고 플레이타임을 봤더니 440시간이 찍혀 있었다. 솔직히 처음 켤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붙잡고 있을 줄은 몰랐다. 결론부터 적으면,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았는데도 좋았던 부분이 그보다 훨씬 많았던 게임이다. 점수를 매기라면 아쉬움 다 합쳐도 만점 가까이 줄 수밖에 없다.
내 플레이 순서가 좀 특이했다. 왕국의 눈물 나오기 약 2개월 전부터 전작 야생의 숨결을 2회차로 다시 파기 시작했다. 사당이고 코로그고 접시까지 핥아먹듯이 다 긁어모은 다음,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왕눈으로 넘어갔다. 이 게임이 2023년 5월 12일 발매라 나온 직후 바로 손에 잡았다. 4년 만에 하는 시리즈라 1회차도 빡세게 돌았더니 야숨 2회차에서만 190시간이 나왔다. 지금 와서 보면 야숨 2회차는 안 돌리고 바로 왕눈으로 갔으면 더 좋았겠다 싶다. 왜 그런지부터 풀어볼게요.

야숨을 막 끝내고 가니 맵 재탕이 크게 걸렸다
가장 아쉬웠던 건 지상 맵이 야숨이랑 거의 똑같다는 점이다. 젤다 시리즈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모험이라고 생각하는데, 4년 전에 구석구석 외운 그 땅을 또 누비니까 지루함이 아예 없을 수가 없더라. 새 캐릭터, 새 이벤트, 새 코로그가 곳곳에 깔려 있긴 한데, 같은 지형을 다시 더듬는 피로까지 덮어주진 못했다.
이건 게임 잘못이라기보다 내 플레이 순서 탓도 크다. 야숨을 접시까지 비우고 곧장 이어 붙였으니 똑같은 지점이 더 크게 눈에 밟혔다. 야숨을 안 했거나 한참 쉬었다 온 사람이라면 이 부분 체감이 훨씬 덜할 거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입문하는 분께는 야숨 직후 연달아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늘섬과 지저는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서브 맵으로 새로 생긴 하늘섬과 지저는 둘 다 처음 인상이 너무 좋아서 더 아쉬웠다. 게임 초반 시작의 하늘섬에 떨어졌을 때는 풍경도 분위기도 탐색감도 전부 신선해서, 앞으로 저런 하늘섬을 잔뜩 돌아다닐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본편 가보니 시작의 하늘섬 같은 제대로 된 섬은 그거 하나뿐이고, 나머지 하늘섬은 사실상 사당 해제용 발판 수준이더라. 기대가 컸던 만큼 시무룩해졌다.
지저는 더했다. 어딜 가나 똑같은 어둠, 똑같은 적, 똑같은 전투의 반복이라 들어갈 때마다 피로도가 쭉쭉 올라갔다. 그래도 이가단 거점 공략이랑 보물지도 따라 보물 찾는 재미, 포우 모으는 맛은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포우였다. 저세상으로 못 가고 떠도는 영혼이라는 설정이라 초중반엔 안타까운 마음으로 필사적으로 주웠는데, 알고 보니 이게 리젠이 됐다. 맵 이동도 없이 크게 한 바퀴 돌면 다시 생기길래 힘이 쭉 빠지더라. 그 뒤로는 대충대충 주웠는데도 9999개가 한계인 줄 알았던 게 10000개를 넘겼다. 이게 한계인가 싶던 숫자를 넘겨버리니 오히려 허탈했다.
업적작은 분명 즐거운데 끝물에 가면 노가다였다
코로그 찾기 같은 수집 콘텐츠가 왕눈에선 훨씬 늘었다. 우물 찾기, 간판 세우기 돕기, 마요이의 유실물 찾아주기처럼 NPC랑 엮인 것들은 모험의 보상 느낌이 있어서 할 만했다. 진짜 벽은 대형 몬스터 토벌이었다. 이건 극단적으로 말하면 오픈월드 노가다의 표본 같았다. 하늘, 지상, 지저를 다 뒤졌는데도 히녹스 네 마리, 바위락 세 마리, 그리오크 한 마리를 끝내 못 찾아서 결국 포기했다. 완벽주의 발동했다가 며칠 날렸다.
조나우 기어 제작은 의외의 1등 재미, 하우징은 최악
평소에 제작이나 시뮬레이션 류는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인데, 울트라핸드로 조나우 기어 조립하는 건 정말 재밌었다. 나만의 배도 띄우고, 멋진 자동차도 굴리고, 공격 드론에 비행기까지 만들었다. 미니게임처럼 응용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다만 쓸 수 있는 파츠 수에 한계가 있는 건 좀 아쉬웠는데, 욕심내서 최대치로 붙여 봤더니 프레임이 뚝뚝 떨어지더라. 아 이게 그냥 막은 게 아니라 기기 성능 한계구나 싶어서 납득은 됐다.
전투 쪽에서 제일 많이 손이 간 건 스크래빌드였다. 무기에 뿔이나 돌, 몬스터 소재를 붙여서 성능과 효과를 바꾸는 능력인데, 전작에서 무기가 툭하면 부서져 스트레스였던 부분을 이걸로 꽤 풀어줬다. 약한 막대기에 단단한 소재 하나만 붙여도 쓸 만한 무기가 되니까, 내구도 부서지는 걸 덜 아까워하게 됐다. 적의 약점에 맞춰 불, 얼음, 전기 속성을 그때그때 붙여 쓰는 재미도 쏠쏠했다. 다만 매번 메뉴 열어서 붙이는 손맛이 번거로운 순간도 있었는데, 익숙해지니 이것도 리듬이 되더라.

반대로 하우징은 최악이었다. 전작에서 열심히 돈 벌어 깔끔하고 예쁜 내 집을 마련해 뒀는데, 왕눈에선 그 집을 통째로 빼앗기고 크래프팅으로 다시 지어야 한다. 파츠 제한이 워낙 커서 마음에 드는 모양은 나오지도 않고, 주는 재료로는 어정쩡한 집밖에 못 짓는다. 위치도 영 별로다. 야숨 때는 마을 변두리라 정감 있었는데, 이번엔 허허벌판 공터에 남쪽으로 언덕까지 있어서 남향도 애매하다. 게다가 내 집 옆에 건설사 직원이 24시간 상주하는 것도 좀 이상했다. 결국 1회차 내내 내 집에 들른 게 5번도 안 됐던 것 같다.
캐릭터는 매력이 확 늘었는데, 서운한 구석도 있다
NPC 쪽은 이번에 확실히 공을 들였다. 호스 하모니 악단처럼 매력적인 집단도 생겼고, 새 조력자들도 좋았고, 토벌대랑 같이 싸우는 장면이나 전작 캐릭터들의 현재 모습도 반가웠다. 특히 야숨에선 살짝 겉돌던 영걸의 후예들이, 왕눈에선 현자의 분신으로 소환돼 함께 모험할 수 있어서 캐릭터에 훨씬 몰입됐다.
그런데 보스전에서 이 분신들이 연출도 비명도 없이 한 방에 전부 리타이어되는 건 많이 아쉬웠다. 그 흔한 으악 소리 한 번만 넣어줬어도 덜 허무했을 텐데. 그래도 엔딩에 다 같이 함께한 건 좋았다.
서운했던 건 전작 캐릭터들이 나를 못 알아본다는 점이다. 카카리코 마을의 푸리코랑 코코나랑은 야숨 때 정말 많이 놀아줬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라는 반응이 돌아오니 좀 속상하더라. 그래도 푸리코 이벤트랑 그 엄마 일기를 볼 땐 마음이 미어졌다. 야숨에서 제일 좋아했던 캐릭터 중 하나인 카시와가 통째로 사라진 건 끝까지 마음에 걸렸다. 혹시나 하고 엔딩까지 갔는데 끝내 안 나오더라. 아이들도 아빠를 안 찾고, 신문기자가 딱 한 번 흘리듯 언급한 게 전부였다.
스토리와 연출, 그리고 왕국의 눈물이라는 제목
여기서부터는 칭찬만 하겠다. 젤다 시리즈가 스토리로 미는 게임은 아니라지만, 사실 이야기 자체가 꽤 좋고 연출은 그 이상으로 기가 막힌 시리즈다. 이번에 켜기 전에 유출본 때문에 핵심 스포일러를 몇 개 당했는데, 그것만 아니었으면 훨씬 더 재밌게 즐겼을 거다. 분탕 댓글로 갤마다 도배해 둔 사람 때문에 시작부터 김이 좀 샜다.
내가 야숨과 왕눈을 가장 높이 사는 부분은 몰입감이다. 회생의 사당에서 막 깨어난 링크가 가진 정보와 플레이어가 가진 정보가 정확히 일치하고, 모험하면서 같이 기억을 되찾으니 링크와 내가 아는 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래서 링크를 믿는다, 링크를 찾아 달라는 식의 대사가 나올 때마다 괜히 뭉클해진다.
진행 흐름도 야숨의 약점을 잘 고쳤다. 야숨은 이야기로는 빨리 젤다를 구하라고 닦달하는데 실제 플레이는 한가하게 떠도는 불균형이 있었다. 왕눈은 시간 여유가 있으니 준비가 되면 출발하라는 식으로 안내해서, 게임 안과 밖의 온도가 맞는다. 준비가 되면 시작하라는 한 문장의 무게를 새삼 느꼈다. 물론 옥에 티는 있다. 마을을 구하고 와도 주요 NPC 대사에 변화가 없거나, 핵심 아이템을 구해도 한참 뒤에야 반응하는 식의 어긋남이 종종 보였다.
이야기를 다 풀고 마지막에 손을 뻗어 놓쳤던 손을 다시 잡아채는 장면에선 펑펑 울었다. 이게 연출의 진짜 한 방인데, 손을 뻗어 잡는 그 행동을 내가 직접 조작한다는 점이 어마어마한 감동으로 돌아왔다. 잘 만든 QTE의 표본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처음엔 야숨 최종전이 더 낫나 싶었는데, 끝에 가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오니 못하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부제인 왕국의 눈물은 클리어 전과 후에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왕국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깨닫고 나면, 다시는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아진다. 젤다의 전설이라는 제목을 두고 차라리 링크의 전설이 맞지 않냐는 농담이 늘 따라붙는데, 적어도 야숨과 왕눈은 젤다의 전설이 맞다고 본다. 그 작은 몸으로 더 내놓을 게 뭐가 있다고 또 그렇게까지 희생하는지, 이번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결국 공주님이었다.
한 줄로 줄이면
맵 재탕과 업적작 노가다, 캐릭터 일부 처리가 아쉬웠고 하우징은 솔직히 별로다. 그런데 조나우 기어 제작의 자유로움, 한층 살아난 NPC, 무엇보다 스토리와 연출과 몰입감이 그 모든 흠을 덮고도 남았다. 440시간을 쏟고도 아깝지 않았으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야숨을 막 끝낸 사람이라면 조금 텀을 두고 시작하면 좋겠고, 아직 안 해본 사람이라면 나는 그냥 지금 바로 켜라고 말하고 싶다. 나도 분명 또 2회차를 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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