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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 노트보다 닉네임 칸을 먼저 켰던 그날 아침
서비스 14주년을 맞은 리그 오브 레전드가 소환사명을 라이엇 아이디로 바꾼다는 공지를 봤을 때, 나는 솔직히 패치 내용보다 한 가지가 더 궁금했다. 이제 닉네임을 다른 사람과 똑같이 써도 되는 건가. 라이엇은 작년 10월에 이미 운을 떼면서 "유저에게 있던 소환사명이 오래 전부터 세계관과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는데, 그 말이 진짜 이유는 아니라는 걸 게임 좀 해본 사람은 다 알았다. 기술지원을 간소화하려는 목적이 더 컸다. 어쨌든 나한테 중요한 건 명분이 아니라, 전환이 시작되는 첫날 내가 오래 노려온 닉네임을 드디어 가져올 수 있느냐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게임을 14년 가까이 붙잡고 있으면서도 닉네임 하나에 늘 미련이 있었다. 처음 계정을 만들 때 아무 생각 없이 적당히 지은 닉이 그대로 굳어졌고, 정말 갖고 싶던 짧은 단어는 늘 누군가 먼저 차지하고 있었다. 파랑정수를 모아서 변경 칸을 열어 봐도, 원하는 단어를 치면 항상 이미 사용 중이라는 빨간 메시지가 떴다. 그래서 이번 중복 허용 소식은 나한테는 단순한 시스템 패치가 아니라, 14년 동안 막혀 있던 그 빨간 메시지가 드디어 풀리는 사건처럼 다가왔다. 첫날 새벽에 알람을 맞춰 둔 것도 그 미련 때문이었다.
전환 방식은 일종의 배틀태그 시스템이라고 이해하면 편했다. 닉네임 옆에 #으로 시작하는 태그가 따라붙고, 그 둘을 합쳐야 한 사람을 특정할 수 있는 구조다. 다른 블리자드 게임을 해봤다면 익숙한 형태인데, 롤은 14년 동안 닉네임 중복을 막아온 게임이라 이게 얼마나 큰 변화인지 체감이 달랐다. 나는 전환 시작 시각에 맞춰서 클라이언트를 켰고, 그 순간부터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했다. 게임을 한 판도 돌리지 않고 닉네임 변경 칸만 노려본 것이다.
평소의 나라면 클라이언트를 켜자마자 솔로 랭크 큐부터 돌렸을 거다. 굳이 닉을 미리 정해 둔 것도 아니었고, 그동안은 닉 같은 건 한 번 정하면 끝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그런데 그날은 매칭 버튼을 누를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닉네임을 못 가져가면 한 판 이기고 두 판 지는 것보다 더 오래 후회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인기 닉은 전환이 풀리는 정확한 시각에 사람이 몰릴 거라고 예상했고, 실제로 커뮤니티에는 며칠 전부터 어떤 닉을 노린다는 글이 한가득이었다. 나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서, 평소엔 신경도 안 쓰던 변경 칸 하나를 위해 알람까지 맞춰 두고 클라이언트 앞에 앉아 있었다. 14년을 같은 닉으로 플레이해 온 입장에서, 이건 단순한 닉 바꾸기가 아니라 게임 정체성이 통째로 갈아엎히는 사건처럼 느껴졌다.

14년 만에 풀린 중복 닉네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켜 보고 알았다
변경 전과 후의 가장 큰 차이는 결국 중복 닉네임 허용 하나로 정리됐다. 기존 롤은 유저끼리 같은 닉네임을 쓰는 게 아예 불가능했다. 누군가 먼저 'ㅁㅁ'를 선점하면 나는 영원히 그 닉을 못 쓰는 구조였다. 그런데 이번 패치로는 같은 닉네임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게 됐다. 대신 앞으로 유저를 구분하려면 닉네임만 보는 게 아니라 바로 옆에 붙은 #XXX 형태의 태그를 같이 봐야 한다.
여기서 내가 첫날 가장 헷갈렸던 부분이 있다. 로딩 창이나 게임 안에서 캐릭터 위에는 여전히 닉네임만 뜬다는 점이다. 태그는 어디서 보냐면, 게임 도중 탭(TAP)키를 눌러서 점수판을 켜야 그제야 보인다. 그러니까 인게임에서 같은 닉을 쓰는 누군가와 한 판에 만나면, 닉네임만으로는 누가 누군지 알 길이 없고 점수판을 켜서 태그를 대조해야 비로소 구분이 된다. 14년 동안 닉네임 하나가 곧 한 사람이라는 공식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이 한 칸의 차이가 첫날부터 자잘하게 손에 걸렸다.
전환을 마치고 그날 저녁에 처음으로 한 판을 돌려 봤더니, 이 차이가 바로 실감 났다. 같은 팀에 나와 비슷한 계열의 닉을 쓰는 유저가 있었는데, 로딩 화면에서는 그냥 닉만 보이니 누군지 가늠이 안 됐다. 인게임에 들어가서 탭키를 눌러 점수판을 켜고 나서야 그 사람의 태그가 내 것과 다르다는 걸 확인했다. 예전 같으면 닉만 보고도 모든 게 끝났을 텐데, 이제는 한 단계가 더 끼어든 셈이다. 사소해 보여도, 매 판 시작할 때마다 누가 누군지 점수판으로 한 번씩 대조하게 되니 첫날 내내 손가락이 탭키로 자꾸 향했다.

내가 노린 닉은 평범했는데, 막상 검색해 보니
사실 나는 거창한 레어닉을 노린 사람이 아니었다. 그동안 닉네임 변경 칸에서 늘 막혔던, 짧고 깔끔한 단어 하나를 갖고 싶었을 뿐이다. 중복이 풀린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사람들의 관심사도 똑같았다. 유명인 닉네임, 혹은 짧은 단어로 된 소위 레어닉네임에 다들 눈독을 들였다. 14년 동안 한 사람만 점유하던 칸이 한꺼번에 풀리는 셈이니, 첫날 새벽부터 같은 단어를 노리는 사람이 몰릴 게 뻔했다.
전환을 막 끝내고 나서 나는 인게임으로 들어가기 전에 외부 통계 사이트부터 켰다. 중복이 풀린 첫날이라 어떤 닉이 얼마나 몰렸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내 전적이나 챔피언 숙련도를 확인하려고 들어가던 사이트인데, 그날은 검색창에 내가 흔히 쓰거나 노리던 닉들을 하나씩 쳐 봤다. 화면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가장 화제가 된 건 역시 롤드컵 4회 우승을 달성한 페이커 이상혁의 닉네임이었다. 통계 사이트 기준으로 이상혁의 닉네임 'Hide on bush'를 쓰는 사람이 2,217명, 'T1 Faker'가 493명, '페이커'가 444명이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던 닉네임이 하루아침에 수천 개로 복제된 화면을 직접 보니, 중복 허용이라는 단어가 그제야 구체적으로 이해됐다.
페이커만 그런 게 아니었다. 'T1 Gumayusi', 'T1 Zeus', 'Deft' 같은 다른 프로 선수 닉네임도 줄줄이 검색됐고, '야스오', '이렐리아', '리신' 같은 챔피언 이름은 적게는 100명에서 많게는 500명 가까운 사람이 동시에 쓰고 있었다. e스포츠가 워낙 활성화된 게임이라 프로 선수 닉네임의 인기가 압도적이었다. 내가 노린 평범한 단어조차 검색 결과가 빼곡했으니, 진짜 레어닉을 노린 사람들의 첫날 경쟁이 어땠을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통계 사이트 화면에는 같은 'Hide on bush'를 단 계정이 페이지를 넘겨도 끝없이 나왔다. 그 중 누가 진짜 이상혁인지는, 통계 사이트가 따로 표시해 주지 않으면 평범한 유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내가 노렸던 짧은 단어 닉도 전환 직후에 검색해 보니 이미 여러 명이 같은 글자를 들고 있었다. 중복이 허용됐으니 그 단어 자체는 나도 만들 수 있었지만, 막상 그 화면을 보고 나니 마음이 식었다. 14년 동안 그 닉을 못 가져간 이유가 누군가 선점했기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선점한 사람도 나도 똑같이 그 글자를 쓸 수 있게 됐을 뿐, 그 닉이 나만의 것이라는 감각은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 구조였다. 페이커 닉 2,217명이라는 숫자가 단순한 화제성 기사 한 줄이 아니라, 바로 내 닉 선택에까지 영향을 주는 현실이라는 걸 그 순간 체감했다. 동일닉이 흔해진 세상에서는 어떤 닉을 고르느냐보다 그 뒤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같은 닉이 수백 명, 그래서 태그라인부터 고민했다
여기서 내 계산이 한 번 꼬였다. 중복이 허용된다는 건 내가 원하던 닉을 드디어 가질 수 있다는 좋은 소식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닉을 나만 쓰는 게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같은 닉을 쓰는 사람이 수백 명이면, 결국 나를 특정하는 진짜 식별자는 닉네임이 아니라 그 뒤에 붙는 태그라인이 된다. 그래서 나는 닉네임을 고른 다음 곧바로 태그를 어떻게 둘지로 고민이 넘어갔다.
내 계정의 기본 태그는 한국 서버를 뜻하는 #KR1로 잡혔다. 같은 닉을 수백 명이 공유하는 상황에서, 친구한테 내 아이디를 알려주려면 이제는 '닉네임만'이 아니라 '닉네임 + #KR1'을 통째로 불러줘야 했다. 예전 같았으면 닉네임 하나만 말하면 끝이었는데, 이제는 태그까지 정확히 붙여야 그 많은 동일닉 중에서 나를 찾을 수 있다. 첫날 친구한테 듀오를 걸려고 아이디를 불러주다가, 닉만 부르고 끝냈다가 친구가 엉뚱한 사람 프로필을 보고 있던 일도 있었다. 태그를 빼먹으면 안 된다는 걸 그렇게 한 번 겪고 나서야 손에 익었다.
실제로 첫날 듀오를 걸 때 친구가 내 닉을 검색창에 그대로 쳐 넣었더니, 같은 닉을 쓰는 다른 사람의 프로필이 먼저 떴다. 친구는 그게 나인 줄 알고 친구 추가를 누를 뻔했고, 나는 황급히 태그를 다시 불러줬다. 14년 동안 닉 하나만 알려주면 100퍼센트 나였던 게, 첫날부터 이렇게 어긋났다. 그제야 #KR1이라는 네 글자가 단순한 꼬리표가 아니라 나를 특정하는 핵심이라는 게 손에 잡혔다.
태그라인을 만지면서 한 가지가 더 눈에 들어왔다. #KR1처럼 서버 기반으로 기본값이 잡히다 보니, 같은 닉을 쓰는 사람이 많을수록 태그까지 똑같이 겹칠 가능성도 따라온다는 점이다. 결국 나를 가장 확실하게 구분해 주는 건 닉네임이 흔하든 말든 닉과 태그의 조합 전체였다. 그래서 친구 목록에 나를 추가하라고 할 때도, 예전처럼 닉만 던지는 게 아니라 #KR1까지 한 글자도 빠뜨리지 말고 적어 달라고 굳이 강조하게 됐다. 닉네임 하나로 모든 게 통하던 14년의 습관이 첫날부터 통째로 바뀌어야 한다는 걸, 친구한테 아이디를 불러주는 그 짧은 순간에 제일 절실하게 느꼈다.
사칭 우려가 괜한 말이 아니었던 이유
전환 첫날 커뮤니티에서 사칭과 사기 우려가 빠르게 올라왔는데, 태그라인을 직접 만져 보고 나니 그게 괜한 걱정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예전에는 닉네임만 봐도 한 사람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KR1 같은 당사자 태그 정보를 미리 알고 있어야만 진짜 그 사람인지 확인이 된다. 페이커 정도 되는 인물이야 정확한 태그 정보가 어디든 공개돼 있겠지만, 인지도가 조금만 낮아도 누군가의 정확한 태그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러니까 같은 닉네임을 단 사람이 수백 명인 상황에서, 누군가 유명인이나 지인의 닉을 그대로 베껴 만들어도 태그를 모르는 상대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나는 첫날 내 닉을 정하면서, 앞으로는 닉네임만 보고 주변 지인이나 유명인을 함부로 단정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닉네임 한 줄이 곧 신원이던 시절은 이날부로 끝난 셈이다.
내가 직접 겪은 것도 비슷한 결의 일이었다. 첫날 한 판에서 같은 팀원이 유명 프로 선수와 똑같은 닉을 달고 있길래, 잠깐이지만 진짜 그 선수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물론 점수판을 켜서 태그를 보면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게 바로 드러났지만, 만약 내가 그 선수의 정확한 태그를 외우고 있지 않았다면 그냥 닉만 보고 헷갈렸을 거다. 페이커 닉을 2,217명이 쓰고 있다는 통계가 단순한 화제 거리가 아니라, 게임 안에서 매번 이런 사칭 가능성과 마주친다는 뜻이라는 걸 첫날 한 판 만에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내 친구들한테 내 정확한 태그를 따로 일러두는 것을, 사기 예방 차원에서라도 챙기게 됐다.
90일 제한과 사라진 개성, 그래도 내가 정한 결론
전환에 대한 유저 반응은 첫날부터 갈렸다. 중복 닉네임을 원하던 사람들은 대체로 반겼지만, 불만도 분명히 있었다. 대표적인 게 변경 주기 제한이었다. 예전에는 파랑정수로 비교적 자유롭게 닉네임을 바꿀 수 있었는데, 이제 90일이라는 시간 제한이 생겨서 아쉽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 번 정하면 석 달은 못 바꾸니, 나 역시 닉을 확정하기 전에 평소보다 훨씬 오래 망설였다.
90일 제한이 왜 생겼는지는 이해가 갔다. 중복이 풀린 마당에 누구나 무한정 닉을 갈아치울 수 있다면, 인기 닉을 잠깐 잡았다 버리는 식으로 시스템이 어지러워질 수 있으니까. 그래도 막상 내가 그 제한에 걸려 보니 부담이 컸다. 예전에는 마음에 안 들면 파랑정수를 써서 가볍게 바꾸면 됐는데, 이제는 한 번 누른 닉이 석 달 동안 고정이다. 그러니 첫날 변경 칸 앞에서, 인기 닉을 무리해서 잡았다가 석 달 내내 후회할지, 아니면 익숙한 닉을 지킬지 한참을 저울질하게 됐다.
여기에 누가 누구인지 일일이 태그로 확인하는 작업이 번거롭다는 말, 중복이 되다 보니 개성이 사라진 것 같다는 말도 첫날부터 올라왔다. 14년 동안 닉네임 하나로 굳어진 정체성에 익숙했던 유저일수록 이 변화가 낯설었을 거다. 나도 그 개성 이야기에는 어느 정도 공감했다. 내 닉이 흔하든 희귀하든, 같은 글자를 수백 명이 동시에 쓰는 순간 그 닉이 나를 대표한다는 느낌은 옅어진다. 결국 나라는 사람을 게임 안에서 붙들어 주는 건 닉의 희소성이 아니라 태그까지 포함한 아이디 전체였다. 나는 결국 그렇게 노리던 짧은 단어 닉 대신, 같은 닉을 쓰는 수백 명과 섞이지 않게 내가 오래 써 온 닉에 #KR1을 붙인 형태로 확정했다. 90일 제한이 있으니 무리해서 인기 닉을 가져가는 것보다, 친구들이 단번에 알아보는 익숙한 닉을 지키는 쪽이 나한테는 맞았다. 그렇게 나는 첫날 한 판도 돌리지 않고 닉 변경 칸만 붙들었지만, 결국 페이커 닉 2,217명이 증명한 동일닉 대란 속에서 인기 닉 대신 #KR1을 붙인 내 원래 닉으로 확정 버튼을 눌렀다. 14년 만에 풀린 중복 허용의 첫날을, 닉이 아니라 태그로 나를 지키는 선택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소울라이크나 인디게임 후기를 주로 쓰다가 이번에는 클라이언트 시스템 변경을 첫날 겪은 이야기를 정리해 봤다. 비슷하게 게임을 깊게 파고든 다른 글도 같이 두고 본다. 보스 내성치까지 직접 정리했던 엘든링 6회차 빌드 후기와, 입문 순서를 비교한 소울 게임 입문 순서 정리도 관심 있다면 함께 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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