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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큰맘 먹고 P의 거짓을 붙잡았다가 정신 차려보니 40시간이 지나 있었다. 소울라이크는 다크소울부터 세키로까지 어지간한 건 다 만져봤는데, 이 게임은 첫 4시간 만에 손맛이 확 붙어서 놓기가 힘들었다. 국산 소울라이크라 반신반의하며 시작했는데, 막상 대검을 쥐고 첫 보스 앞에 서니 그런 의심은 금방 접었다. 2023년에 나온 게임이라 이제 와 후기냐 싶겠지만, 나처럼 뒤늦게 세일로 산 사람도 많을 것 같아 정리해 둔다.

카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를 다크판타지로 비튼 세계관이라, 주인공은 제페토가 만든 인형이다. 그래서 호텔 크랏에 들어가려면 나는 인형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거짓말을 해야 한다. 원래 인형은 거짓말을 못 하는데 주인공만 예외라는 설정이 게임 제목이랑 딱 맞물린다. 로딩 화면에서 피노키오 코가 길어지는 연출까지 챙겨둔 걸 보고, 아 이 게임 참 꼼꼼하게 만들었구나 싶었다.

시작은 대검, 그런데 무기 조합이 진짜였다

첫 무기는 대검, 곡검, 세검 중에 고를 수 있는데 나는 고민 없이 대검을 골랐다. 소울겜은 역시 큰 무기라는 국룰을 믿었거든. 근데 초반 대검이 약공 1타랑 강공 1타가 죄다 찌르기 모션이라 영 상남자답지가 않았다. 대형 무기 쥐었으면 시원하게 후려패야 하는데 콕콕 찌르고 있으니 답답했다. 첫 지역을 미는 5분 내내 이 무기 뭔가 아쉬운데 싶었다.

여기서 이 게임의 핵심 시스템을 알게 됐다. 무기가 날과 손잡이 두 부분으로 분리된다. 날은 실질적인 대미지랑 공격 리치를 담당하고, 손잡이는 무브셋이랑 능력치 보정을 담당한다. 그러니까 대검 날에 다른 손잡이를 끼우면 무브셋 자체가 바뀐다는 소리다. 이걸 안 순간 이 게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나는 대검 날에 전력코일봉 손잡이를 붙여봤다. 그랬더니 콕콕 찌르던 무기가 갑자기 위아래로 내려찍는 상남자 무브셋으로 바뀌었다. 이거지 싶었다. 무기 종류를 새로 파밍하지 않아도 조합만으로 취향에 맞는 무기를 만들 수 있으니, 하나 얻을 때마다 날이랑 손잡이를 이리저리 바꿔 끼우는 재미가 쏠쏠했다. 손잡이마다 붙는 능력치 보정이 달라서, 힘 캐릭이면 무거운 손잡이를 끼우고 기술 캐릭이면 찌르기 보정 손잡이를 끼우는 식으로 자기 스탯에 맞게 최적화하는 맛도 있다.

강화도 소울시리즈처럼 재료에 소량의 소울을 얹어서 하는데, 강화가 날 부분에만 적용된다. 필요한 강화 재료가 1개에서 2개, 4개로 늘어나는 구조라 초반엔 여러 무기에 찔끔찔끔 투자하지 말고 한 무기만 쭉 키우는 게 편했다. 나도 처음엔 이것저것 강화했다가 재료가 부족해서 후회했다.

P의 거짓 대검 전투 장면
대검 날에 다른 손잡이를 끼우면 무브셋이 통째로 바뀐다

정극 방어를 익히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른 게임

처음엔 구르기로만 보스를 상대했다. 근데 이 게임 회피가 좀 특이하다. 무적 판정이 회피 시작이 아니라 끝날 때쯤 붙는 느낌이라, 공격을 피한다기보다 공격이 떨어질 자리를 미리 비켜준다는 감각으로 움직여야 했다. 블러드본 때랑 비슷한 리듬인데, 처음 몇 시간은 이 타이밍이 안 맞아서 애먹었다. 헛구르기로 정통으로 맞고 죽은 게 10번은 넘는 것 같다.

전환점은 정극 방어, 그러니까 퍼펙트 가드를 손에 익히면서 왔다. 가드 자체는 대미지를 무기 감소율만큼 깎아주는데, 적이 붉게 빛나는 순간에 타이밍 맞춰 막으면 체력도 무기 내구도도 안 닳고 오히려 보스의 그로기 수치를 쌓는다. 세키로의 칼 튕기기를 떠올리면 된다. 붉은 공격은 구르기로 못 피하고 정극 방어로만 받아내야 하는 것도 많아서, 이걸 못 하면 특정 보스는 벽처럼 느껴진다.

나는 30분 넘게 붙잡고 있던 보스를 정극 방어에 눈뜨자마자 두 번 만에 잡았다. 막을 자신이 생기니까 도망 다니지 않고 코앞에서 맞받아치게 되더라. 가드로 잃은 회색 체력은 블러드본처럼 곧바로 때려서 되찾을 수 있어서, 겁먹고 물러서는 것보다 붙어서 패는 쪽이 이득인 설계다. 이 게임이 왜 공격적인 플레이를 권하는지 그때 알았다.

그로기도 한몫한다. 계속 공격하거나 정극 방어로 그로기 수치를 채우면 보스 체력바가 흰색으로 변하는데, 이때 차지 강공이나 페이블 아츠를 꽂으면 그로기가 터지면서 앞잡, 그러니까 치명타를 넣을 수 있다. 엘든링의 자세 붕괴랑 비슷한 시스템인데, 소극적으로 굴러다니면 이 딜타임을 영영 못 만든다. 결국 이 게임은 붙어서 싸우라고 등을 떠미는 구조다.

페이블 아츠와 P기관, 성장의 방향

페이블 아츠는 스태미나 게이지 아래 파란 게이지를 소모하는 특수기다. 잿빛 에스트 같은 걸로 따로 채우는 게 아니라 적을 때려야 서서히 차오르는 자원이라, 이것도 결국 공격을 유도한다. 재밌는 건 날과 손잡이가 각각 고유한 페이블 아츠를 하나씩 가진다는 점이다. 날 페이블 아츠는 대부분 공격기고, 손잡이 쪽은 패리 같은 방어기가 많았다. 무기를 조합할 때 대미지만 보는 게 아니라 어떤 페이블 아츠 조합이 나오는지도 계산하게 되니 조합 폭이 꽤 넓다.

리전 암도 빼놓을 수 없다. 왼팔이 기계라 여러 특수 무기를 갈아 끼울 수 있는데, 처음 받은 퍼펫 스트링은 적을 잡아당기는 용도였다. 근데 사거리가 짧고 보스한테는 잘 안 먹혀서 초반엔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안 왔다. 나중에 화염이나 전기 계열 리전 암을 얻고 나서야 잡몹 정리랑 보스 견제에 제대로 써먹었다. 이 왼팔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도 전투 리듬이 달라진다.

P기관은 주인공 심장에 박힌 부품인데, 쿼츠라는 재료를 모아 강화하면 잠재 능력이 하나씩 풀린다. 나는 회피 관련 능력부터 열었다가 나중에 회복 아이템 소지량을 늘리는 쪽으로 갔는데, 이 선택으로 캐릭터 성향이 은근히 갈린다. 특히 1회차를 클리어하면 6단계가 열리면서 무기를 2개에서 3개까지 동시에 장착할 수 있게 된다. 회차를 돌수록 손패가 넓어지는 구조라 뉴게임 플러스가 그냥 반복 노가다로 끝나지 않는다.

에스트에 해당하는 회복 아이템은 처음엔 3개로 시작해서 나중에 4개까지 늘었다. 소울겜 유저라면 다 아는 그 긴장감이다. 회복 한 번이 아쉬워서 보스 앞에서 손이 덜덜 떨리는 순간, 이 게임도 그걸 정확히 재현해 놨다.

P의 거짓 별바라기 세이브 지점
별바라기에서 무기 조합과 P기관을 손보며 다음 지역을 준비했다

보스전은 짜릿한데, 어엇박이 발목을 잡는다

보스들은 대체로 잘 만들었다. 첫 보스부터 2페이즈로 나뉘어서 2페가 되면 등에 짊어진 물건을 뽑아 무기처럼 휘두르는 식으로 패턴이 확 바뀐다. 아레나 조명이 보스 실루엣을 극적으로 비춰주는 연출도 좋아서, 문 열고 들어갈 때마다 긴장이 됐다.

문제는 일부 패턴의 박자다. 직관적으로 예측되는 공격도 많은데, 중간중간 타이밍이 어어어엇박으로 늘어지는 공격이 섞여 있다. 언제 회피 버튼을 눌러야 할지 감이 안 오고, 패턴이 끝났는지 아닌지도 애매해서 헛구르기를 하다 얻어맞기 일쑤였다. 특히 연타 공격은 한 번 맞기 시작하면 히트스턴 때문에 끝까지 확정으로 얻어맞는 경우가 잦아서, 이럴 땐 진짜 컨트롤러를 내려놓고 싶었다.

나는 이런 보스를 만나면 큰 무기를 잠깐 접어두고 세검으로 바꿔서 빠르게 치고 빠지는 식으로 넘겼다. 무기 조합이 자유로우니 벽을 만나면 무브셋을 통째로 갈아버릴 수 있다는 게 이럴 때 큰 무기가 됐다. 큰 사브르로 벽을 느낀 보스를 레이피어 계열로 바꾸자마자 금방 넘어간 경험도 있다. 보스가 안 잡히면 무조건 실력 탓만 할 게 아니라 무기 세팅부터 의심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카메라도 좀 아쉬웠다. 대부분의 소울라이크보다 시점이 멀찍이 빠져 있어서 보스 전체 패턴은 잘 보이는데, 정작 내 캐릭터가 가드에 성공했는지 회피 모션 중인지가 잘 안 보인다. 정극 방어처럼 프레임 단위 판정이 중요한 게임에서 이건 은근히 손해다. 후반 광원 강한 보스방에서는 특히 내 캐릭터가 잘 안 보여서 손가락 감으로만 막은 적이 많았다.

레벨 디자인과 소소한 아쉬움

레벨 디자인은 기대 이상이었다. 지역 하나하나가 짧은 대신 지름길을 뚫어 별바라기 하나로 왔다 갔다 하게 짜여 있어서, 미로 같은 길을 파악하는 재미가 살아 있다. 프롬 게임이 다크소울3와 엘든링을 거치며 세이브 지점을 너무 많이 뿌린 게 개인적으로 불만이었는데, 이 게임은 그걸 적당히 아껴 써서 긴장을 유지한다.

다만 지역과 지역을 잇는 지름길이 없어서 한 지역을 끝내면 뚝 끊기는 느낌은 살짝 남는다. 다크소울1처럼 온 맵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그 짜릿함까지는 아니라는 거다. 그래도 각 지역 내부의 숏컷 설계는 촘촘해서, 멀리 돌아온 길이 사실 아까 그 문 뒤였다는 걸 깨닫는 순간의 쾌감은 확실히 있다.

무기 내구도가 닳아 세공 모션으로 날을 가는 시스템은 연출은 멋진데 보스전 도중엔 귀찮기만 해서 왜 넣었나 싶었다. 한창 딜타임인데 날이 무뎌져서 잠깐 갈아줘야 하는 그 텀이 은근 신경 쓰였다. 성우 연기 톤이 살짝 어색하게 들리는 구간도 있었는데, 이건 몰입에 크게 방해되진 않았다.

40시간을 채우고 남은 생각

단점을 늘어놨지만 40시간 내내 즐거웠다. 무기 모션이 서로 부드럽게 이어지고 타격 사운드와 이펙트가 손맛을 잘 받쳐줘서, 그냥 잡몹 몇 마리 패는 것도 지루하지 않았다. 약공 1타 뒤에 강공을 누르면 강공 2타가 나가는 식으로 공격끼리 자연스럽게 연계되는 감각이 특히 좋았다.

국산 소울라이크가 이 정도 완성도로 나온 게 반가웠다. 세키로의 칼 싸움과 블러드본의 공격적인 리듬을 좋아했다면 취향에 맞을 거라고 본다. 반대로 방패 들고 느긋하게 거리 재는 정통 다크소울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초반엔 답답할 수도 있다. 이 게임은 결국 붙어서 막고 되받아치는 손맛으로 승부를 보는 쪽이니까.

나는 지금 3회차 무기 세팅을 짜는 중인데, 다음엔 곡검 날에 아예 다른 손잡이를 붙여서 완전히 새 무브셋으로 처음부터 돌아볼 생각이다. 아직 안 열어본 페이블 아츠 조합이 한참 남았다. 이 조합 놀이가 질리지 않는 한, 세이브 파일을 지울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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