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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로를 산 건 순전히 세일 때문이었다. 프롬소프트웨어 게임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할인 목록에서 칼 든 닌자가 담벼락을 타는 스샷을 보고 재밌어 보여서 그냥 질렀다. 2019년 3월 22일에 나와 그해 게임대상까지 받은 물건이라는 것도, 소울라이크가 악명 높게 어렵다는 것도 그때는 잘 몰랐다.

직접 붙어보고 나서야 이 게임이 좀 특이하다는 걸 알았다. 세키로는 방패로 막고 구르는 게임이 아니라, 칼과 칼을 부딪쳐 상대의 체간을 깨뜨리고 인살로 끝내는 게임이었다. 나는 유파 기술보다 평타 위주로 싸웠고, 찌르기는 3회차 내내 한 번도 안 썼다. 그렇게 손버릇을 새로 배워가며 3회차까지 돌았고, 보스는 전부 잡았다.

세키로 전투의 핵심은 체력이 아니라 체간 게이지다. 상대 공격을 정확한 타이밍에 튕겨내면 상대 체간이 차오르고, 그게 꽉 차면 인살 한 방으로 끝낼 수 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오래 버티는 싸움이 아니라, 겁먹지 않고 앞으로 붙어 칼을 맞대는 배짱 싸움에 가깝다. 뒤로 빼는 버릇이 있으면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세키로 뉴비가 프롬 게임 처음으로 도전한 첫 화면
첫 프롬 게임으로 세키로를 골랐다

세키로 엔딩은 크게 4개로 갈리는데, 회차마다 다른 걸 봤다. 1회차는 인간 회귀, 2회차는 용의 귀환, 3회차는 수라 엔딩을 봤다. 각 엔딩은 막판 선택에서 갈리는데, 나는 회차마다 일부러 다른 길로 갔다. 같은 게임을 세 번 도는데도 매번 결말이 달라서 회차 노가다가 지루하지 않았다. 회차를 거듭하면서 쿠로의 부적을 반납한 무부적 상태에, 종귀불상 종까지 울려 난이도를 계속 올렸다. 오늘은 그 지긋지긋하고 즐거웠던 과정을 보스별로 정리해두려고 한다.

세키로에는 이름값을 하는 시스템이 하나 있다. 죽어도 그 자리에서 한 번 회생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이걸 남발하면 용해병이라는 게 퍼져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콜록거리기 시작한다. 내가 특정 보스한테 하도 많이 죽는 바람에, 나중엔 온 동네가 기침을 해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죽음마저 게임 안에서 이야기가 되니, 죽는 게 억울하기보다 미안했다.

적귀 앞에서 세 시간을 박았다

초반 관문인 적귀부터 벽이었다. 이 덩치 큰 놈 하나 잡느라 3시간은 쓴 것 같다. 환불은 자존심 상해서 죽어도 하기 싫었고, 그래서 꾸역꾸역 매달렸다. 폭죽을 쓰면 짐승 계열이 겁을 먹는다는데 그것도 모르고, 폭죽 얻기 싫다고 정면으로 박치기만 했으니 오래 걸릴 만했다.

기술은 인간형 상대엔 이연 계열을, 짐승형 상대엔 불사 베기를 주로 썼다. 닌자 도구는 폭죽을 제일 많이 꺼냈고 수리검과 도끼가 그다음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초반엔 이 도구들을 아까워하며 거의 안 썼는데, 그게 난이도를 스스로 올린 셈이었다.

불 뿜는 소도 비슷하게 애를 먹였다. 1회차엔 어버버하다 잡았는데, 2회차에 부적을 반납하고 들어가니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됐다. 짐승형 상대를 잘 못하는 편이라 벚꽃 두른 소한테도 피똥을 쌌다. 이때는 몰랐다. 세키로가 컨트롤 익숙해지면 다시 와서 웃으며 잡게 되는 게임이라는 걸. 실제로 2회차에 적귀를 다시 만났을 땐 걱정한 게 무색하게 금방 정리했다. 손이 기억을 하더라.

소울라이크 게임 중 제일 어려운 건 처음 잡아본 소울라이크라는 말, 그게 딱 맞았다. 프롬 게임이 처음이라 소울라이크 입문 순서를 검색해보기도 했는데, 세키로는 좀 예외적인 물건이었다. 다른 소울류가 방패와 회피로 버티는 게임이라면 세키로는 정면에서 칼을 맞대는 게임이라, 입문작으로 삼으면 오히려 손버릇을 처음부터 새로 익혀야 한다.

나비 부인은 구몬 선생님이었다

중반으로 갈수록 이 게임이 사람을 가르치려 든다는 걸 느꼈다. 오니교부는 때릴 때마다 다음 기술이 뭔지 광고를 해주는 프로레슬러 같았다. 아시나 겐신은 정작 보스보다 겐신까지 가는 길에 도적들을 뚫고 화통과 도끼를 얻는 구간이 훨씬 긴장됐다. 보스 자체는 무지성으로 간파하기만 눌렀더니 어느새 이겨져 있었다.

나비 부인은 오답노트를 받아주는 선생님이었다. 닌자 도구를 써봐라, 붙어서 싸워야 유리하다, 튕겨내기를 연습해라. 그런 걸 하나씩 지적해줬다. 6번쯤 죽고 잡았는데, 붙어서 튕겨내는 기본기를 여기서 겨우 익혔다. 오니교부보다 쉬운데 싶었다가, 뒤에 이어지는 연전에서 패턴을 다 까먹고 몇 번씩 죽었다.

돌이켜보면 나비 부인이 세키로의 진짜 튜토리얼이었다. 여기서 붙어 싸우는 법을 못 익히면 뒤가 통째로 막힌다. 나도 이 보스를 넘긴 뒤부터 뒤로 도망치는 버릇이 조금씩 빠졌고, 그제야 이 게임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진짜 담임은 아시나 겐이치로였다. 튕겨내기, 간파, 점프 밟기, 뇌반까지 그동안 배운 걸 숙제 검사하듯 하나씩 확인시켰다. 천수각 위에서 벌어지는 연출도 멋져서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보스였다. 3번 만에 잡고 나서 자신감이 확 붙었고, 한동안 게임을 켜면 재대전으로 겐이치로부터 두들겨 패며 손을 풀었다.

세키로 겐이치로 보스전 튕겨내기 장면
겐이치로는 그동안 배운 걸 검사하는 담임 같았다

다만 뇌반, 그러니까 번개를 되받아치는 기술은 여기서 제대로 못 익혔다. 삑사리가 자꾸 나서, 결국 뇌반은 최종 보스인 검성 아시나 잇신까지 가서야 몸에 붙었다.

겐이치로는 후반에 토모에류라는 이름으로 한 번 더 나온다. 처음엔 불사 베기 패턴에 대응을 못 해 몇 번 죽었는데, 알고 보니 그 패턴이 오히려 거저 주는 반격 기회였다. 한 번 두들겨 패던 상대는 다시 만나도 두들겨 패게 되더라. 검성을 만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겐이치로를 실컷 팼다.

짐승형 보스는 끝까지 애를 먹였다

인간형 보스는 튕겨내기 리듬만 타면 그럭저럭 잡았는데, 덩치 큰 짐승 계열은 마지막까지 힘들었다. 카메라에 다 안 잡힐 만큼 큰 놈이 달려들면 어디를 피해야 할지 감도 안 왔다.

수호원숭이가 그랬다. 1페이즈는 쉽게 잡았는데 2페이즈부터 완전히 벽이었다. 그래도 2페이즈에서 인살 표시가 뜰 때 좀 흥분되면서 긴장으로 손이 떨렸다. 창이 약점이라는 건 다 잡고 나서야 알았다. 사자 원숭이는 겐이치로가 올려준 자신감을 통째로 박살 냈다. 짐승형 전투가 안 익숙해서 1페이즈부터 답이 없었고, 환약을 다 먹어가며 똥꼬쇼를 했다.

큰 짐승형 중에서도 정체불명의 짐승 한 마리는 그냥 벽이었다. 처음 볼 땐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 감도 안 잡혔고, 카메라에도 다 안 잡힐 만큼 커서 화면 밖에서 얻어맞기 일쑤였다. 인간형 보스엔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 이 덩치들 앞에선 전의를 잃었다. 결국 개똥꼬쇼를 해가며 겨우 잡았고, 2회차부턴 마주치기 싫어서 동선을 통째로 바꿨다.

제일 짜증 났던 건 목 없는 원숭이가 나오는 구간이다. 트라이 횟수만 따지면 사람형 보스가 더 많았는데, 둘이 동시에 다구리를 치니 데미지도 체간도 못 쌓겠어서 멘탈이 먼저 나갔다. 2회차부턴 얼굴 보기도 싫어서 아예 다른 마을부터 도는 길로 우회했을 정도다.

이 감각은 다른 오픈월드 소울류를 할 때도 비슷할 것 같다. 엘든링처럼 필드 자체가 넓은 게임은 보스 하나가 안 잡히면 다른 데를 돌다 오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는데, 세키로는 길이 정해져 있어서 그 도망이 잘 안 통했다.

부엉이와 검성, 진짜 벽 두 개

세키로에서 마음이 두 번 꺾일 뻔했다. 첫 번째는 양아버지 부엉이다. 인간형이라 나름 자신 있게 갔는데 그냥 찢겼다. 실수 한 번에 체력이 쭉쭉 빠지고, 자꾸 도망 다니는 패턴이 얄미웠다. 잡는 데 2시간 넘게 걸렸는데, 하루는 3시간 박고 멘탈이 나가서 껐다가 다음 날 일어나 다시 도전해서 겨우 넘겼다. 부엉이를 깼을 땐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부엉이를 넘기고 나니 바로 이어지는 파계승은 오히려 스무스했다. 1페이즈 처리하고 2페이즈 인살, 3페이즈는 불사 베기로 한 번에 정리했다. 앞의 벽이 너무 높았던 탓인지 뒤가 쉬워 보이는 착시가 있더라.

사실 파계승은 두 번 나온다. 처음 만나는 환영 쪽은 꼼수로 넘길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정면으로 붙었다. 엇박이 너무 심하고 체력도 체간도 단단해서 여기서 유난히 많이 죽었다. 정작 뒤에 나오는 진짜 파계승은 재를 뿌려 잡는 방법이 따로 있다는 걸, 다 깨고 나서야 알았다.

두 번째 벽은 최종 보스 검성 아시나 잇신이다. 1페이즈는 노년 잇신이 칼을 넣고 체간을 회복하는 패턴이 무서워서 접근도 못 했다. 그러다 붙어서 바로 튕겨내기를 누르는 식으로 대응하니 1페이즈는 넘겼는데, 2페이즈에서 불을 쓰기 시작하면서 또 한참 죽었다. 우산을 쓰라는 글을 보긴 했지만 손에 안 익어서, 결국 폭죽으로 불 패턴을 끊고 번개는 뇌반으로 되받으며 잡았다.

검성전은 싸우는 장소도 한몫했다. 천수각처럼 좁은 데였으면, 아니면 앞서 부엉이와 싸운 그 마당이었으면 훨씬 어려웠을 것 같다. 넓은 벌판이라 도망칠 공간이 있어서 그나마 숨을 돌렸다. 3페이즈에서 번개를 쏘길래 뇌반으로 되받으려 했는데, 뇌반을 제대로 못 익힌 탓에 벼락을 실컷 맞고 죽기를 반복했다. 쿠로가 던져주는 쌀까지 주워 먹으며 그 한 판에만 1시간 가까이 붙었다. 이 검성을 무부적에 종귀불상까지 켠 2회차 상태로 다시 깼을 때, 실력이 늘었다는 게 처음으로 확 체감됐다.

종을 울리고 부적을 반납한 2회차

세키로가 진짜 무서운 건 2회차부터다. 부적을 반납하면 가드를 해도 체력이 찔끔찔끔 깎이기 때문에, 1회차에서 우습게 잡던 잡몹조차 다르게 보인다.

2회차에 종귀불상까지 켜니, 1회차에서 눈길도 안 주던 잡몹이 진짜 위협이 됐다. 가드로 버티던 습관이 통하질 않으니, 잔챙이 하나 지나가는 데도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덕분에 튕겨내기 타이밍은 확실히 늘었다. 세키로는 이렇게 사람을 억지로 성장시키는 구석이 있다.

초반에 등장하는 별거 아닌 적한테 가드가 뚫려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었을 때가 기억난다. 2회차 첫 죽음이 언제일까 내심 궁금했는데, 어림도 없이 여기서 바로 뒤졌다. 내가 그동안 한 게 튕겨내기가 아니라 튕겨내기 반, 가드 반이었구나 싶더라. 세키로를 하면서 제일 충격받은 순간이 이 무렵이었다.

종귀불상은 적을 강하게 만드는 대신 아이템 드랍을 늘려준다. 난이도가 확 올라가는 걸 알면서도 종을 울리게 되는 게 이 게임의 묘한 중독성이다.

반대로 기믹 위주인 보스들은 2회차에서 오히려 빠르게 넘겼다. 오카미의 장 시즈카는 1회차엔 그 앞까지 닿는 길이 너무 빡세서 고생했는데, 2회차부턴 스킵 루트를 알고 나니 금방 지나갔다. 신성한 용은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기믹 보스라 만만하게 봤다가, 눈먼 검기에 4번쯤 맞아 죽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런 보스는 컨트롤보다 요령이라, 한 번 풀고 나면 다음 회차가 편했다.

물가에서 싸우는 여성 검객 중간 보스는 반대였다. 2페이즈에서 내 버프가 꺼지자 완전히 다른 놈이 됐다. 데미지가 약해지니 패턴을 더 오래 봐야 하고, 그러다 튕겨내기 실수가 나오고, 체간 관리가 흐트러지고, 그렇게 도미노처럼 어려워졌다. 겨우겨우 이기고 나서 내가 알던 그 보스가 맞나 싶었다.

수라 엔딩과 에마, 그리고 맘의부

3회차는 수라 엔딩으로 갔다. 여기서 뜻밖의 복병이 에마였다. 겐이치로보다 훨씬 어려워서 놀랐다. 잡기 성능이 말이 안 됐고, 나보다 몸집이 작아서 패턴이 잘 안 보였다. 유리 대포 같아서 몰아붙이면 잡을 만은 했는데, 그날은 최강 보스라는 맘의부보다 에마한테 더 많이 죽었다.

수라 루트에는 강한 적이 연달아 몰아치는 보스 러시 구간이 있다. 앞에서 하나씩 익힌 걸 몰아서 시험받는 기분이었는데, 에마도 이 러시를 몇 번 돌면서 손에 익었다. 처음엔 단독으로 붙어도 쩔쩔맸는데, 러시에서 반복해 만나니 잡기 타이밍이 눈에 들어오더라. 반복이 답인 보스가 있고, 에마가 딱 그랬다.

맘의부는 세키로 최강의 보스라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전 보스를 잡으면서도 내가 저걸 연전으로 잡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막상 붙어보니 실력이 늘어서인지 금방 몰아붙였는데, 1페이즈 기습 까마귀와 2페이즈 삼연속 까마귀 시위에 처음엔 박살이 났다. 단독전으로 돌아와 연습하니, 기습 까마귀가 노년 잇신의 슬립 후 공격과 같은 궤라는 게 보였다. 그때부터 대응이 됐고 3트 만에 잡았다. 악명에 비하면 생각보다 할 만했지만, 이걸 무부적 종귀불상으로 갔으면 가드로 체간이 걸레가 되고 인살당했겠다는 그림이 보이긴 했다.

돌아보면 실력이 늘었다고 확 체감된 구간이 몇 개 있다. 천수각에서 겐이치로를 잡았을 때, 부엉이를 잡았을 때, 검성을 잡았을 때, 그리고 2회차에서 무부적 종귀불상으로 검성을 다시 넘겼을 때. 그 순간마다 손이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밤마다 세키로를 붙잡던 책상의 패드
튕겨내기가 손에 붙을 때까지 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세키로가 준 것

의부를 처음 깼을 땐 새벽에 소리를 질렀고, 최종 보스를 넘겼을 땐 가슴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이런 성취감을 주는 게임을 그동안 왜 안 했나 싶었다. 죽고 또 죽어도 환불 생각이 안 드는 게임은 처음이었다. 프롬 게임 팬층이 왜 그렇게 두꺼운지, 세키로 한 편으로 알 것 같았다.

업적 목록을 보니 아직 손 안 댄 콘텐츠가 꽤 남아 있었다. 안 써본 유파 기술이 많고, 3회차 내내 찌르기 한 번 없이 깬 것도 지나고 보니 좀 아쉽다. 다음 회차엔 일부러 안 쓰던 기술을 꺼내 보고, 도구도 아끼지 말고 다 굴려볼 생각이다.

이제 4회차는 불사 단절 엔딩까지 보고 스킬 노가다와 업적까지 마무리할 생각이다. 모든 보스와 연달아 싸우는 사투답파도 한번 해보고 싶다. 세키로 하나로 프롬 게임에 이렇게 빠질 줄 몰랐다. 다음엔 다크소울 계열도 손대볼 참이고, 최근에 나온 P의 거짓 같은 국산 소울라이크도 궁금하다. 첫 프롬 게임이 세키로였던 건, 지나고 보니 운이 좋았다.